헤이리에서 몽우 조셉킴 선생을 만나 도장 하나를 주문 제작했습니다.
몽우 선생께서 만들어 주신 예술도장과 사용하고 계신 조각기는 다음 기회에 별도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땅 어디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비석들이 있습니다. 여러번 방문해 친근한 곳인 파주 자운서원도 어김없이 그러합니다. 묘비, 신도비, 기적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요. 수백년의 비바람을 이겨낸 우리 선조들의 문(文)과 서(書), 그리고 각(刻)을 엿볼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름 한 자 남김 없는 각공, 각수들의 피와 땀을 생각하며 가슴이 저려옵니다.
세월은 흘러 현대 문명과 이기의 발달은 아이러니하게도 물질의 형상은 더 발전한듯 보이지만 가끔 우리를 더 피로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지요. 기계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며 그 속도는 질주와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어 무섭기까지 합니다.
헤이리 마을의 봄, 반가운 손님 한 분이 오셔서 가끔 자신의 그림 갤러리 앞에서 도장을 새기고 계십니다. 몽우 조셉킴 선생이지요. 어찌어찌하여 함자를 들어 알게된지라 소장하고 싶은 마음에 도장 하나를 부탁드리며 잠시 몇마디 주고 받았습니다. 몽우 선생은 조셉아트공방의 운영자로 익히 여러 글을 통해 알고 있었던지라 선생에 대한 설명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던 우를 범해서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송구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선생 주변의 기운을 느끼면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저려오기도 합니다.

선생은 도장나무를 손으로 만져본 경험이 있던지라 제게도 타인의 힘을 빌려 맞춤의 방식을 고민하라 했지만, 그건 나의 일이였기에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도장의 인면(印面)을 각하는 일에 버금가게 힘든 공정이 도장의 재료를 만드는 일입니다. 손목이 고장나 일상에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서도 바보같이더 욕심이 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어느 문명의 기계가 대신할 수 없었으나 문, 서를 보며 정과 망치을 들고 수만번 부수고 쪼개 비석 하나를 만들었던 석공의 노고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논쟁의 여지 없이 신성한 노동의 결과이기에 더 포기할 수 없는 일이지요.
몽우 선생은 죽을 것 같았다는 표현을 썼고 도장 하나를 만드는 모든 과정 중에 하나라도 기계의 힘을 빌리고자 함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어떤 일도 사람보다 앞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어려웠던 시절 삶을 유지해준 작은 도장가게, 그 책상 위 천안조각기에서 만든 수동조각기 조작이 가장 익숙한 일이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조셉아트공방의 사이트나 몇몇 미술평론가들은 그 분이 고려목전각의 유일한 전수자로 평가하고 있는데, 진정한 목전각의 전통 기법을 직접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창신동 도장집의 1세대들이 조각대와 인장도 몇 개로 성가를 하고 자식을 키워낸 장인이건만 지금은 인장조각기에 의지해 도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마치 우리 삶의 방식이 시간의 흐름에 길들여지듯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학자와 장인들도 ‘전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의 우리의 노동의 방식과 노력 또한 먼 훗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면 그 또한 소소한 전통이 되어 있겠지요.
도장에 대한 짧은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